TV가 없던 시절, 공회당의 정치 연설회는 항상 성황을 이루었다. 입장하지 못한 청중들이 앞마당으로 운집하며 행사장 밖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여러 차례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특히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1930년 2월 7일, 헌정 정화 연맹의 주최로 개최된 각 파 입회 대연설회 당일 밤의 모습이다. 당시에 연사로 민정당의 요코야마 가쓰타로, 정우회의 이토 지유, 사민당의 마쓰오카 고마키치, 대중당의 고노 미쓰, 노농당의 오야마 이쿠오가 참석했는데, 청중의 가장 큰 관심사는 오야마 이쿠오였다. 연설은 고노 씨까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이어 오야마 씨의 차례가 찾아왔을 무렵, 오야마 씨는 앞선 혼고 행사장이 혼란에 빠지면서 히비야 행사장으로는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대리자로 노농당의 나카무라 다카이치 씨가 대신 연설자로 나섰지만, 청중을 납득시킬 수는 없었다. 당일은 입장 정리비로 50전을 받았는데, ‘오야마가 단상에 오르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50전을 도로 내놓으라’고 격분한 사람들로 인해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오야마 씨가 겨우 도착한 시간은 밤이 깊어가는 11시였다. 급하게 단상에 올라 30분간 연설을 진행하자 자리를 메운 청중들은 그제서야 만족한 표정으로 해산했다. 시간은 11시 30분, 공회당이 이렇게 늦게까지 문을 연 사례는 이후에도 이전에도 단 한 차례밖에 없었다. 또, 같은 해 하마구치 총리가 대연설을 실시한 민정당 연설회에서는 폐회 후 청소를 하니 뜯어진 단추가 무려 한 되나 나왔다는 놀라운 사실도 기록되어 있다.